2017.08.17
아이를 낳고 나서는 사실 내 생활이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돌이켜 보면, 출산 전에 가져야 할 것은 나를 포기하고 엄마를 향해가는 나를 지지하는 굳은 마음, 다짐, 확신, 의지 같은 것.
출산의 고통은 자연 분만이라면 대략 5~48시간 이내이지 않을까. 그 고비를 지나고 나면 일단 내 몸의 회복을 위한 시간이 필요하다. 보통 삼칠일이라고 21일 동안은 정말 조심해야 하고, 보통은 60일 정도까지 회복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한다. 일단 출산 후에 급격히 몸이 되돌아오는 시기가 있는데 그것도 며칠 정도. 오로가 미친 듯이 빠지고, 회음부가 낫고, 자궁이 원래 자리로 돌아가고, 뱃살은 뭐랄까 세상 경험해 보지 못한 텍스쳐라고 해야 할까? 아무튼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텍스쳐인데 젤리나 마쉬멜로우 같으면서도 카스테라 느낌인 채로 아직 부풀어 있는 상태. 그런 변화를 겪는 며칠 사이에 모유 수유라는 대형 프로젝트의 고비가 벌써 온다. 사실 이 프로젝트의 시작은 출산 직후, 아이에게 젖을 바로 물리는 것부터.
모유수유가 중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잘 알 것이다. 나도 알고는 있었지. 근데 문제는 별로 심각하게 생각해 보지 않았다는 것이다. 공부해 본 적도 없고, 그냥 요가 학원에서 열린 모유수유 마사지 프로그램에 남편과 몇 번 참여해 본 정도. 그 유방 마사지법 배워서 샤워할 때에나 가끔 집에서 남편이 마사지 해준 정도로는 준비될 수 없는 것이 모유수유 였다. 일단 기본적인 지식이 필요한건데 난 왜 친구가 보라고 준 모유수유 책을 이제서야 보고 있는 것인가. 조리원을 나온 후에도 바로 조리원으로 뛰어가서 마사지를 받아 울혈을 풀었고, 그 뒤에도 오케타니 관리를 한 번 받았음에도 또 방심해서 최근에 울혈이 장난 아니게 생겨서 장장 5일을 손으로 마사지 하면서 유축해서 겨우 정상 상태로 돌려 놓았다. 그러고 나서야 모유수유 관련 책을 보니 참 감회가...
물론 책은 좀 지루했다. 중요한 포인트를 알긴 알겠는데, 너무 반복되는 이야기가 많아서였다. 그리고 조리원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되었다. 사실 준비하지 않았던 나를 다시 돌아보게 되었다고 말하는게 맞겠다. 조리원에서, 특히 모유수유를 지향하고 유방 관리를 잘 해준다는 그런 조리원을 예약해 뒀으니 내가 할 일은 다 했구나 생각했던 내 안일함. 조리원에서 모유수유에 대한 지식과 유방 관리에 대한 팁을 줄 수는 있어도 처음부터 하나하나 알려주고 그러지는 않는다는 것을 몰랐다. 그냥 그 공간에 있으면 어떻게든 해결이 되겠구나 했던 것이 내 착각이었어.
가령, 갓 태어난 아이는 엄마의 초유만 먹어도 며칠은 버틸 수 있다는 것. 그 양이 아주 적을 경우에만 주사기나 컵이나 스푼 같은 것으로 분유를 먹인다는 것. 생각해보면 병원에서는 그렇게 했던 것 같다. 내가 젖을 물리고 있다가 데려가시면 주사기로 분유를 조금 먹였다고 했었던 듯하다. 본격적으로 젖이 돌기 시작하면 애한테 계속 물리는게 어쨌든 며칠간 고생하더라도 그게 답인데, 모자동실을 하지 않는 조리원에서 그렇게 하기란 쉽지 않다. 일단 수유콜이 오면 가서 하면 되지만 애가 원할 때마다 가는 일이 그리 쉬운가. 특히 태어난 지 며칠 되지 않았을 때에는 산모도 몸이 무겁고 힘든데 애도 아직 빠는 힘이 적고 빨다가도 금방 잠에 빠져서 수시로 깨워서 먹여야 하니 한 번 수유하는데 40분 이상은 기본으로 소요되는데 말이야. 40분에서 한 시간은 애와 사투를 벌이다 방으로 돌아가면 애가 금방 잠에서 깨어서 다시 젖을 달라고 한다며 다시 수유콜이 올 것이다. 그렇게 하루 하루를 보내다 보면 체력이 달려서 '(분유를) 보충해주세요!' 라는 말이 안 나올 수가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24시간 모자동실을 하자니 덜컥 겁이 나겠지. 애와 하루 종일 부대끼면서 있을 생각을 하니 말이다. 그래도 난 만약에 아주아주아주아주아주 만약에 둘째를 낳게 된다면 24시간 모자동실을 하는 조리원을 찾을 것 같다. 그런 곳도 힘들다고 얘기하면 신생아실에서 봐주시기도 하니깐, 아주 어렵지는 않을 거야. 아무튼 조리원에서 황달도 걸리는 바람에 분유를 꽤 많이 먹였는데, 그게 모유수유 문제의 시작이지 않았을까 싶어졌다.
갓 태어난 아이와 하루 종일 같이 있으면, 언제 배고파 하는지, 어떻게 우는지, 어떻게 자는지, 언제 싸는지, 엄마가 파악하게 된다. 그게 중요한데 조리원에서는 그게 안되는 환경이니 나는 조리원을 나오기 직전에 굉장히 두려웠다. 하루에 애가 얼마나 먹고 있는지, 얼마나 어떻게 싸고 있는지 정확히 모르고 있었고 그것을 알고 싶었는데 매번 내가 체크를 하고 물어보지 않는 이상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거든. 알 필요가 없는 것처럼. 그러다 조리원을 나오기 전날에 원장님이 2주간의 영우의 상태를 종합해서 정리해 주셨었는데, 그 때 부터 본격적으로 애를 나의 컨트롤 아래 두게 되는 상황이 더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어차피 조리원을 나오면 그것은 모두 엄마의 몫. 과연 조리원에서 아기 초첨책을 만들고 요가를 하고 마사지를 받고 하는 일들이 꼭 필요한 걸까. 그 모든 것을 뒤로한 채, 식사와 빨래 정도 남의 손에 맡기고 나머지 시간은 온전히 아이를 대하려는 마음 가짐, 그게 사실 필요한 것이었다고 이제서야 알게 된다.
그런데 그게 정말 쉽지가 않다. 나를 모두 내려 놓고 아이에게 나의 모든 시간을 내어주는 일 말이다. 그렇게 일상을 잠식 당하는 것이 싫어 조리원에 있는 거지. 나를 회복시키기 위해서, 마사지도 받고, 잠깐의 외출도 하고, 티비도 편하게 보고, 핸드폰도 자주 가지고 놀고, 그런 것.
디카페인 커피에 우유 호로록 넣어
얼음 사각사각 넣어서 라떼 만들어 놓고
블로그 좀 하려고 하니 애가 울어 ㅠㅠㅠㅠㅠㅠㅠㅠㅠ
집으로 돌아와서 엊그제 처음으로 포대기로 영우를 뒤로 업고!!! 청소기를 돌리고 빨래를 개고 밥을 먹고 노트북을 신나게 갖고 놀면서 행복했던 기억에 오늘도 해보려다가 망했다 ㅋㅋㅋ 커피 한 잔 타 놓고 애 업었더니 난리난리 우느라고........ 블로그 글 하나 쓰려면 임시저장 했다가 다시 쓰고 또 이어 쓰고 해야 하니 한 사나흘은 기본으로 걸린다. 도대체 육아불로거들은 언제 글을 쓰는 거니... 애를 잘 재우는 방법부터 마스터 해야 하나봐.
어제는 영우를 재워 놓고 낮에 자연주의 산후조리를 위한 책과 모유수유 책을 읽었고, 그저께는 좋아하는 음악을 틀어놓고 흥얼흥얼 했다. 고작 그것들 하는게 그리 즐겁다. 아이가 세상 모르고 자고 있는 그 시간이 너무너무너무 소중해.
'호나미랑 달콩이랑 > 달콩이의 성장' 카테고리의 다른 글
(D+82) 쇼핑이 좋습니다... (0) | 2017.08.26 |
---|---|
(D+76) 일상의 회복, 그 첫 번째 (FEAT. 자이요가) (0) | 2017.08.21 |
(D+69) 엄마의 운전 연습 (스타필드 고고) (0) | 2017.08.17 |
(D+65) 부가부 비3 디젤 락 유모차 도착! (feat. 예방접종, 백일상 예약) (0) | 2017.08.10 |
(D+61) 50일 사진을 또 찍어욧! (feat. 감성더하기 스튜디오) (0) | 2017.08.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