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를 처음 접한 것은, 재즈 잡지 'Jazz People' 의 한 켠, '오디오가이' 스튜디오에서 녹음된 음반을 광고하는 섹션이었다. 음반을 먼저 샀었는지 mp3를 먼저 찾았는지는 기억이 나진 않지만, 올림푸스 홀에서의 그의 첫 번째 공연에 친구 둘을 끌고 갔던 기억이 난다.
오디오가이 스튜디오. 네이버 지도를 보며 찾아갔지만, 결국 전화를 걸어 겨우 건물을 찾을 수 있었다.
두 대의 카메라로 모든 공연은 인터넷으로 생중계 되었고, 40 여명의 팬들이 그 현장에 함께했다. 함께한 사람들이 내 또래인 20대 후반, 30대 초반이 많을 거라 생각했는데 예상외로 젊은 아빠와 중고생 딸이, 나이 지긋한 부부가, 젊은 처자들이 각각 따로따로, 젊은 커플이, 어린 아이들이(물론 공연 장소 바깥에 있었지만!) 있었다. 관계자들까지 하면 그 좁은 스튜디오에 한 50여명 있었지 않았었나 싶다. 즉흥 공연이 주를 이루어서 조금 낯설게 느껴진 면도 있었고, 새로운 면도 있었고, 음반으로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과 가까이서 보고 싶은 마음까지 그 모든 것이 범벅이 되었다. 연주를 듣다가, 어느 설국에 끝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피아노와 연주자와 나만 서 있는 것 같은 기분도, 눈을 감았더니 어느 스칸디나비아반도에서 맛있는 것을 먹고 있는 듯한 상상도, 눈물이 울컥 나는 영화를 한 편 보고 있는 듯한 감정도, 집에 있는 고양이들이 그립고 보고픈 마음도 나를 지나쳐갔다.
그는 자주 울먹거렸다. 우리는 자주 키득키득 댔고. 그는 참 진지하고 장난스럽다. 대부분의 예술가들이 그런 것도 같다. 까칠하고 어려운 것과 친근하고 다정한 것, 여리고 섬세한 것을 자유롭게 장착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해왔다. 예전엔 예술하는 사람을 사랑하고 싶었었다. 그럼 내가 예술적인 사람이 될 것만 같던 시절이었다. 지금도 나는 예술적인 사람들을 동경한다. 그들에게서 느껴지는 인간에 대한, 세상에 대한, 삶에 대한 철학적인 그 어떤 것이, 내가 단지 듣고 보고 읽기만 해도 나에게 전이되는 느낌이 든다. 왠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내가 전보다 더 나은 사람인양 그렇게 행동하려 한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부끄럽게도.
그가 또 운다. 그는 눈물이 많다.
공간은 점점 따뜻해진다. 낯설고 환상적인 공간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가 다시 돌아간다고 하니, 나도 왠지 파리를 가야할 것 같다. 파리는, 거기 어느 거리에 서 있을 때보다도, 멀리서 그 곳을 그리워하게 될 때 더욱 간절한 공간이 되는 것 같다. 그 도시의 힘이 이렇게까지 큰 것인가... 자주 난 그렇게 생각한다.
좋은 연주를 좋은 친구 꽥꽥이와 함께 봐서 참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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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오가이 스튜디오. 네이버 지도를 보며 찾아갔지만, 결국 전화를 걸어 겨우 건물을 찾을 수 있었다.
두 대의 카메라로 모든 공연은 인터넷으로 생중계 되었고, 40 여명의 팬들이 그 현장에 함께했다. 함께한 사람들이 내 또래인 20대 후반, 30대 초반이 많을 거라 생각했는데 예상외로 젊은 아빠와 중고생 딸이, 나이 지긋한 부부가, 젊은 처자들이 각각 따로따로, 젊은 커플이, 어린 아이들이(물론 공연 장소 바깥에 있었지만!) 있었다. 관계자들까지 하면 그 좁은 스튜디오에 한 50여명 있었지 않았었나 싶다. 즉흥 공연이 주를 이루어서 조금 낯설게 느껴진 면도 있었고, 새로운 면도 있었고, 음반으로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과 가까이서 보고 싶은 마음까지 그 모든 것이 범벅이 되었다. 연주를 듣다가, 어느 설국에 끝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피아노와 연주자와 나만 서 있는 것 같은 기분도, 눈을 감았더니 어느 스칸디나비아반도에서 맛있는 것을 먹고 있는 듯한 상상도, 눈물이 울컥 나는 영화를 한 편 보고 있는 듯한 감정도, 집에 있는 고양이들이 그립고 보고픈 마음도 나를 지나쳐갔다.
그는 자주 울먹거렸다. 우리는 자주 키득키득 댔고. 그는 참 진지하고 장난스럽다. 대부분의 예술가들이 그런 것도 같다. 까칠하고 어려운 것과 친근하고 다정한 것, 여리고 섬세한 것을 자유롭게 장착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해왔다. 예전엔 예술하는 사람을 사랑하고 싶었었다. 그럼 내가 예술적인 사람이 될 것만 같던 시절이었다. 지금도 나는 예술적인 사람들을 동경한다. 그들에게서 느껴지는 인간에 대한, 세상에 대한, 삶에 대한 철학적인 그 어떤 것이, 내가 단지 듣고 보고 읽기만 해도 나에게 전이되는 느낌이 든다. 왠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내가 전보다 더 나은 사람인양 그렇게 행동하려 한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부끄럽게도.
그가 또 운다. 그는 눈물이 많다.
공간은 점점 따뜻해진다. 낯설고 환상적인 공간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가 다시 돌아간다고 하니, 나도 왠지 파리를 가야할 것 같다. 파리는, 거기 어느 거리에 서 있을 때보다도, 멀리서 그 곳을 그리워하게 될 때 더욱 간절한 공간이 되는 것 같다. 그 도시의 힘이 이렇게까지 큰 것인가... 자주 난 그렇게 생각한다.
좋은 연주를 좋은 친구 꽥꽥이와 함께 봐서 참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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